ep001.
아주 오래된-이라고 말 하고 싶지만...1996년 12월의 여름이니, 미묘한 시간의 거리감이랄까? 엊그제처럼 머리를 지나가는 기억의 영상을
보고있노라면 그리 오래전의 시간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한 사람의 수명을 두고 말한다면 결코 짧지도 않은 시간.

시간의 거리감.이라...


아주 파란 하늘과 마주하게 되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오르게 되는 풍경.
회색빛 어둡고 추운 날씨가 계속되던 12월의 겨울에서 한 여름으로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떠나와 버린 듯했던 그 때의 하늘. 그날의 하늘.
그런것을 기억하고 있어? 라는 소리를 혹시나 들을까봐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날의 항공편명도 기억하고 있고, 내가 생각했던그 "차원의 이동"에
의하여 "다른 세계"에 첫 발을 디뎠던 그 시간조차 잊지 않고 있다. 눈이 부셔서 보기도 힘들었지만, 차안의 대쉬보드에서 흐릿하게 비춰지던
그 녹색라이트가 표시하고 있던 시간은... 그 일분이 신기했을 정도니까.

....

국민학생 시절, 마마가 사다주신 새 크레파스를 열었을 때 나란히 정렬되어 있던 그 선명한 색감마냥-
아주 아주 파랗고- 너무 너무 녹색-이였던 풍경이 계속 되었고. 당시 책을 제외하고 가장 좋아했던 투니버스의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은빛날개"같은
색을 내려주는 해가 있었다.

....

생각해보면 내 시대의 한국사람으로 태어나, 넓디넓은, 끝이보이지 않는 녹색잔디의 풍경.이 기억의 바탕이 되기도 흔치않은 일이겠지...
라는 생각이 아주 잠시 전, 찰나의 순간에 들었다.

....

국민학교를 건너뛰고 입학했던, 그 다른 세상의 중학교를 매일아침 가기위해. 한바퀴 도는데 한시간은 족히 걸리는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잔디공원을 가로 질러야만 했었다. 샌들이였던 교복에도 불구하고 매일아침 이슬을 잔뜩 먹은, 잔디밭을 25-30분씩 걷다보면 공원에서 나올즈음엔
샌들을 신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젖은 잔디를 신고있었다.
그 쪽 세상의 사람들에겐 그런 것이 익숙한지, 공원 끝의 작은 "나가는 길"마다 골프장에서나 볼법한 신발의 잔디를 털어내는 기계가 있었는데...
처음 며칠동안은 "아침마다 이래야 하나.."하며 투덜거렸지만 몇주가 지난 후에는 마치 일상처럼, 그것도 능숙해진 잔디털어내는 테크닉을 보유하게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5분씩이나 걸렸던 "신발에서 잔디 떼기"가, 나중에는 멈추지도 않고 기계에 발을 올려놓고 스윽-스윽-하고,
손가락으로 신발의 사이드/뒤쪽을 스윽-닦아내고 다녔으니까.

...

몇번이나 옮겨다녀야 했던, "집"들이였지만 딱-한번을 제외하고는 이와 비슷한 커다란 "잔디밭"을 가로질러야지 학교에 닿을 수가 있었다.
어쩌면 큰키에도 힐(그때는 물론 통굽 혹은 높아봤자 4cm정도였겠지만)에 익숙해진 것도 잔디밭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바뀐
교복탓에 샌들은 더 이상 신지 않았으니, 구두에 양말을 신어야 했는데 잔디밭을 지나다보면 분명히 다 젖을 것이 뻔했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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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eiruss.tistory.com BlogIcon 케이루스 2010.03.11 12:31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편안합니다. 1996년이라니. 도대체 몇 년 전이야.. ㄷㄷ

    • Favicon of http://its3am.net BlogIcon RynnA 2010.03.14 02:58 신고  링크  수정/삭제

      그러니까. 깜짝놀랐어.
      1996년에 유학을 시작했으니까.

      케이군이 그렇게 말하는거보니까, 확실히 오래되긴 한 얘기는 맞나봐.
      근데 엊그제 같기도 해.

  2. Favicon of http://daegul.tistory.com BlogIcon 데굴대굴 2010.03.11 14:26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1996년에 DSLR로 찍은건가요? 으음... 이거 달력에 넣으면 딱! (무슨 소린지 아시겠죠? ㅎㅎ)

    • Favicon of http://its3am.net BlogIcon RynnA 2010.03.14 02:59 신고  링크  수정/삭제

      아뇨. 사진은 최근(이라고 말하지만 벌써 5-6년은 된것인지도..참 무섭군요 시간이)것.이에요.

      달력... 쿡.
      안그래도 마음(?)에 두고 있어요. 달력용.이로구만..하면서.

  3. Favicon of http://rinz.tistory.com BlogIcon Rinz 2010.03.16 01:07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음..

    파아란 하늘인가요. 초록의 향연이 펼쳐진 곳인가-
    드넓은 모습이네요. 그만큼 새로운 세상..
    쉽게 적응하시기 어려우셨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