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02.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잊고 싶은 기억들도 솔솔 그 고개를 치켜올리고 있다. 여기 나도 있다고,
....

만10살이 되던 해-떠났던 한국.
도착하게 되었던 그 땅에는 사실 흔한 "친척"조차 있었던 곳이 아니었기에 "가디언"이라는 법적으로 "보호자"의 역할을 하게되는 그곳에 이민오셨던
한국인 "선생님"이 생겼고 살게 된곳은 현지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보내줬던 "외국인 학생 홈스테이" 관련 Notice에 한번쯤 "오케이"를 했던
집에서 생활을 하는 홈스테이로 정해졌었다. 

...

지난 세월 "너처럼 복 많은 인간이 또 어디있니-" 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웃으며 "그래요" 라고 하며 살아왔지만, 그리고 스스로도 "그렇다고" 믿고
살고 싶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잊혀졌다, 그런 기억은 없다, 라고 자신을 속여온 기억들을 전부 끄집어 내보자면,
과연, 그 갖은 복은 다 갖고 태어났다는 나에 대해서... 과연? 이라고 누구든 되묻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

수없이 옮겨다녀야 했었다. 처음 유학을 시작하던 해에만 4-5곳의 다른 집들을 "옮겨다니며" 진심으로 "짐을 풀기도 전에" 심지어 극도로 예민한
성격에 화장실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옮겨다녀야만 했다.

옮겨야 했던 이유도 가지가지.

.... 유학생 둘 이상만 모아놔도 아마 하루가 짧을 정도로 계속되는 이야기들이겠지만, 내게는 그 기억들이 "나쁘다" 라기 보다는 "억울하다"라는.
쌓인 "한"이 너무 많아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어른이라면 몰라도 아이들이 있었던 집에서는 처음보는 "동양인"인 여자애와 함께 하는 것이 당연히 불편했음으로 생겼던 차별이라던가,
도를 지나쳤던 장난들..이던가 하는 것은 웃어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예로, 물건 감추기-같은 것 따위를 하다가 그 집 막내가 내 침대 아래 숨겨둔 그 집 딸내미의 "돌 콜렉션"이라던가, 닦은 이를 "닦지 않았다고"
홈스테이아주머니한테 가서 일러바쳤던? 일들이라던가... 몸이 아픈날에도, 어린 아이는 집에 혼자 두는 것이 불법인 탓에 39도가 되는 열에도
불구하고 그 집의 개구쟁이 아들을 데릴러 학교에 가야만 했었던 일이라던가.

...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전부 우스운 얘기고, 그랬었지...하면서 작은 한숨과 흘려버릴 수도 있는 기억이고 얘기이것만. 생각해보면 나는 이 일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으나 잊은 척 했고 없었던 일인 척 했었다. 무드셀라증후군을 앓고 있노라며. 가장 속이고 싶었던 것은 자신이 아니였을까-

지금 이토록이나 자신에 대해 똑 부러지게 말을 할 수 있게 된 이유, 혹은 이렇게 되게끔 했던 일들이라면 - 이 십몇년전 있었던 기억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누구도 나를 변호해줄, 나를 믿어줄 사람이 없었던 그때. 사실, "어리지만" 머리가 "나쁘지도 못해서"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고 해도
나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눈빛으로 보고 있었는지를 눈치차리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서.

늘어만 갔던 것이 일기장의 페이지 수.

아주 가끔, "사실은 이런 일이였고, 나는 하지 않았는데, 당신은 내게 묻지도 않고 그 쪽 이야기만 들었지요? 어린것이 죄였었군요. 
나를믿어줬어야 하는 당신은 단 한번 내 의견조차 묻지 않았었죠." 라고 당시 내 "가디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던 이에게 말하고 싶어질때가 있다.
... 이제는 아무런 소용도 없고, 다 지나간 일인 것을. A형이냐, 뒤끝이 좋지 않냐-라는 소리를 듣는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모든 일들이 지난 몇년 후, 이사 전 마마께서 참 예쁘게 정리해놓으셨던 "자식 셋의 서랍"중 큰딸인 나의 서랍에 들어있던 당시 "가디언"이라는
그 사람이 적었던 나의 "보고 사항"들에 적혀진 글들을 보며. 한참이나 치를 떨었던 것이. 나를 생각해주고 믿어주고 있었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던
내게, "아 시람은 나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리고, 이런 소리를 하고 다녔구나" 라는 것이 그것도 나의 부모님께.

아주 커다란 상처-로 남았었던 것 같다.

....

생각을 해보면, 그 나이에 사람을 그것도 나를 보살펴준다고 하는 어른을 의심.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던 일이라서.
요 몇년, 조기유학이 흥행(?)하면서 유학원의 행패라던가, 사기에 대해서 하도 많이 다뤄서 그런지 생각해보면 "저러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이야-"
라는 생각도 종종 들기도 하지만.

돈을 잃는 것은 가장 "작은"것을 잃은 것이라고, 마음이 그리고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던 부모님이라서,
이렇게 따지자면 사실 나는 그 시절,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게 되었고 그 후유증으로 만성위궤양을 14/5살때부터 앓기 시작했으니...
아닌 척한채로 살아왔고, 또 그런 나를 모르는 척 해주며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 가장 큰 것을 잃었고 잃은채로 살아오지 않았나 싶기도.

....

만 14살의 여름.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내 결정으로 그 "가디언"을 해고하고 부모님께서 보내주시는 학비, 생활비에 대한 은행계좌 관리를 시작했고,
15살. 더 이상 빠져나올 수도 없었던 지옥과도 같았던 낯선이들의 집에서 눈치보며 사는 것을 정리하고 ... 당시 살던 도시 시내의 호텔아파트에서
혼자살기 시작했다.

...

생각을 해보면, "그래도..."하는 마음으로 기댈 수 있는 언덕-이라고 계속해도 되었을텐데, 그때서부터 차라리 "혼자"이기를 선택했던 것 같다.

옷장이 모두 거울로 되어있던 그 호텔/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 더 이상은 젖은 잔디밭이 아닌 시멘트로 된 다리를 건너 학교에 다니게 된 것도.
혹은 버스를 타기 시작한 것도 그때서부터 인것 같다.

그러고보니, 오늘에서야 처음, 제대로 시간을, 나이를 계산해보았다. 2001년 12월. 만 15살의 나이서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구나....하고.
그 당시 한해 쓰고도 많이 남는 돈을 부모님께서 보내주셔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 모르고 살았지만... 이미 만성이 되어버린 위궤양도,
내출혈도.... 속쓰림의 약도 그때서부터 시작되었고, 불면증도 그때부터 시작된 것을 생각해보면 내게는 변화의 단계였던 것 같은데.

...

도시 한 가운데로 작은 강이 흐르는 덕분에, 잠이 오지 않는 밤 발코니에 몸을 한껏 내밀면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15살의 여자아이가 한밤중 발코니에서서 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는 그 모습 자체가, 상상만으로도 "니가 뭘 안다고.."
라는 잔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이런게 어른이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지금만큼 절망이라는 것을 헤아릴 수 있던 나이는 아니였지만, 15살의, 16살 나름의 아픔이 있었고. 웃음과 강함으로 꼭꼭 감추고 있었지만.
외로움을 잘 타는 체질-이라기보다는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오랜 시간 놓여있다보니 이것이 자연스러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

10%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것이 언제의 "정확한 수치"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내 나이에, 그 시절에 조기유학을 시작한 것은 1%, 그리고 그 중에 "성공"한 유학이 10% 밖에 되지 않는 다는 이야기를.
스스로, 나는 "성공한 유학생"이라고 자부하고 그렇다고 믿고 싶었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도대체 어떤 설문조사에서, 대체 무슨 기준으로
"성공"이 10%미만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인가-싶다.

...

조기유학에, 한글도 영어도 잘 못해서 특별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 지금.
그 '돌아간'아이들은 성공의 반대인 실패에 해당이 되는건지, 아니면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성공인것인지...

...

한국인으로써의 10%의 삶이야, 사실 지금 돌아봤을 때 10%가 아닌 1%도 안되는 삶을 살아온 것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궁금한것은 그 "성공"의 barometer.


...

그 나이에 부모님 없이 언어도 통하지 않고, 생전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곳에 던져졌을 때-
받는 스트레스라던가, 상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있겠어-랄까. 체념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꽤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우니까 (허나, 반대로 지금의 내가 아닌 나를 나는 과연 상상조차 할수 있는것인가? 하는것)...
다시하라고 한다면 아마 겁이 많이 나겠지만 (차라리 모를때 훨씬 더 용감할 수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 그래도 아마 다시 그 가시밭길을 걸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뼛속까지 아웃사이더인지. "다르다"라는 분위기가 나는 내가 꽤 괜찮다고 생각해버리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단 한번 제대로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 현명하고 철저하고 남들보다 "다르고 뛰어난"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으니까. 나를 지키려면 그 방법밖에 더 있겠나...싶고.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 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나 뿐만 아니라 이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만큼이나 상처를 갖고,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 너라고 다르겠냐, 하는 삶의 비밀을 알아버렸기 때문 아닐까.
.... 잔인하기도 해라. 너도 나만큼 아플테니 우린 셈셈이고 그래서 괜찮다.라니.

....


사실 조기유학.이라고 할수 있는 10-16살(나같은 경우 16살에 고3으로 고등학교를 한번 졸업했었지만, 통상적으로 17부터 고등학교를 시작한다
생각했을때)을 통틀어서 내가 "행복했던 해"는 잠시 부모님과 학교를 때려쳤었던 13-4살의 10개월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지도.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아프고 잔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은거,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것은 가능하게 해주신 부모님의
서포트 덕분에 견뎌낼 수 있었지 않나...싶어서. 상처를 낫게는 해주지 않지만 적어도 그 잠시동안은 깊어진, 벌어진 상처에서 흐르는 절망을
모른 척 할 수 있어서.

....

조기유학- 얼만큼 아이를 강하게 키우고 싶어서? 라는 질문을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사실, 반대로 내 아이가 내가 겪었던 상처와 아픔과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면 죽어도 할 짓이 못된다고 말하고도 싶지만... 또, 자신할 수 있는 것은. 효도아닌 효도가 당연한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린아양이 자랑스럽게 마망을 놀릴때 하는 말이지만,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마마는 내가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언제 치는지, 수능을 언제 보는지도
몰랐을거면서... 티비에서 매년마다 보는 아줌마들 봐봐, 마망은 적어도 경제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약과였어 왜 이래"

-오늘날 까지도 날 살수 있게 하는 유일한 자부심. 그래도 난 우리 마마한테는 효녀였어.라는 것.


수 많은 시간 담당 상담의 선생님들과의 세션에서도-
내 병은 내가 고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며 pre-med를 듣고 의대를 잠시 생각했었던 날들 속에서도-
단 한번 하지 못했던 가장 오래된 상처와, 하소연과 설움을, 다 토해버린 글.


썼다 지웠다.


두서없고. 결코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들.



....


후련하니까. 린아야 - 말 하자. 괜찮아.
-11d s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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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eiruss.tistory.com BlogIcon 케이루스 2010.03.11 12:35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言っても良いよ

  2. Favicon of http://daegul.tistory.com BlogIcon 데굴대굴 2010.03.11 14:25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후련하다면 그걸로 OK.

  3. 정윤 2010.03.11 15:28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난 언제쯤 이렇게 말 할 수 있을까..ㅎ
    멋져-
    ...어때??

    • Favicon of http://its3am.net BlogIcon RynnA 2010.03.14 03:02 신고  링크  수정/삭제

      고마워-

      라고 해야 하는건가? 멋지다고 해야 하나.
      그냥. 그런 시간이 있었고, 내 안의 closure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겠지.

      사실, 이렇게 쉽게 닫힐것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인정이라도 하는것이 가능하다-라는 것에 대해서 의미를 두고.

      응. 나 멋지다고 할래.

  4. 2010.03.13 16:07  링크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its3am.net BlogIcon RynnA 2010.03.18 08:56 신고  링크  수정/삭제

      11:50PM/님..

      싱긋. 적게 봐주신거에요? 정신연령이라기보다는, 경험치로 봤을때 나이는 환갑.이라는 소리도 ..
      종종듣다보니. 30대 중반.정도야.. (하하)

      저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서 11:50PM님의 마음을 절대로 헤아릴 수 있다고 말을 못하겠지만,
      환갑의 경험치와는 반대로 감정적인 면에서는 미숙아라서 아직 마마와 파파가 없는 삶을 상상할수도 없어서 말이지요,
      하지만 국토순례 혹은 국토대장정.이라는 악몽과도 같았던 경험은 해봤답니다. 굉장히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최연소-라고 매스컴에 실리기까지 했었는데, 과연 지금은 어떨까-싶지만 말이지요.

      끄덕.

      확실히 공감해요. 한국의 교육환경을 운운하는, 시스템자체를 불평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제게는 그저 "핑계"로 들린다랄까,

      언제 어디에서나, 다른 사람과 나은 이들은 나오잖아요? 잔인한가,

      그런 분들 꽤나 계셔요. 장하다.랄까, 나이를 떠나서, 저 사람은 참 되고 기특한 사람이로구나. 싶은.
      사실 제가 이런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도, 그분들의 삶을 후에 본다면 누구나도 인정하는 삶이 되겠지만서도.

      책에 대한것은 어쩔수 없이 공감하게 된답니다.
      사실 너무 읽어서 문제가 된거아닌가-싶은 마음도 종종 들때도 있지만.
      수많은 감정을, 경험들을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을 알고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못하는거겠지요?
      (씽긋)

      끄덕.
      아마 부모님의 굉장히 뚜렷한 어린날의 교육때문에, 10살이후로는 방목(-)이였으나,
      확실히 일분 후, (현실적으로 오늘.이겠지만)의 시선으로 삶을 보는데 익숙하게 된것 같아요.
      하하하.

      언니.. >_<라니요, 쿡쿡.

  5. Re+ator 2010.03.14 00:27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토닥토닥- 길을잃을때가 많지요- 그래도 린아님, 무릎 다까지고 팔꿈치도 상처투성이지만 길을 잘 만들어가시구 계신 거 같아요-^-^

  6. 2010.03.14 23:38  링크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7. 2010.03.16 01:34  링크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

  8. 2010.03.19 00:53  링크  수정/삭제  답글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