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그렇게 긴장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너 17살 맞니?"
 
서울에서부터 17시간의 비행, 8시간의 공항에서의 기다림. 그리고 또 다시 3시간의 차로 이동해야지만 도착할수 있었던,
미국 동부의 최북단 주인 메인(Maine)의 이 눈-밭의 고등학교는 비록 국민학교, 중학교의 졸업장은 갖고 있지 않은
내가 내 두번째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었던 곳이다.
 
처음이란 이유로, 새롭고 낯선 세상에 발을 들여 놓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대게 긴장하는 것과 조금은 설레이고 두려워 하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고 또 남들도 그렇다고 믿는것이 세상의 관념이라면.
17시간의 비행과 8시간의 기다림 후에 날 맞이했던 이들은 아무렇지 않은듯 태연스레 두개의 그다지 크지도 않은 가방을 옆에 세워두고
신문을 읽고 있던 나를 보며 들었던 생각은 
"저건 또 뭐야?" 였다며...
 내 첫인상을 졸업 전에 갔던 Senior Trip 중 과거를 회상하며 말해줬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건데 아마도 내가 그렇게나도 무덤덤하고 아무렇지 않고, 더욱이 설레이지도 않았었던 이유는-
그 시절의 나는 꽤나 길었던 뉴질랜드의 겨울의 장마가 불러다준 절망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상태였으며,
비록 많지는 않았던 나이이지만, 6-7년이나 지구를 한 나라마냥 돌아다녔었던 나에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저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에 한발자국 다가갈 수 있었던 또 다른 동네-라고 생각했었던 것뿐이였다.

-그리고 더더욱 솔직하자면, 섯부른 설레임과 기대는 실망을 안겨 준다는 것을 이미 적지 않은 나이에 몇번이나 체감했었던 터이고,
긴장감이라고 해봤자 어차피 사람이 사는 곳인데 또 얼마나 다르면 달랐을까-라는
마치 인생을 두세번 살아본듯한 내 안의 애늙은이 심성 때문이였는지도 모른다.
 
Maine-메인주는 굉장히 추운 동네 였다.
돌아보자면 나는 이미 크리스마스카드에 두껍고 털이 북실북실한 산타복을 입고 선물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할배산타와,
빨간 수영복-삼각팬티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던-을 입고 늘씬한 루돌프와 서핑을 하고 있는 할배를 보고 '산타'라
생각할 정도의 세계관
에 살고 있었으니,
8월의 크리스마스는 조금 오버라할지언정 10월에 눈이 내리고 내 생일인 4월의 폭설이 내린다고 해도
솔직히 "그게 좀 어때서-" 라며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터였다. 한마디로 귀염성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 볼 수 없었던
냉정하고 신랄하며 나의 세상에 대한 경계를 절대로 늦추지 않았던.
옆에 오는 것만으로도 털이 삐죽삐죽 서게 만들정도로... 매서운 여자 아이였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을 한.
 
하지만 나의 작은 뇌의 뉴론들이 서로를 초속의 스피드로 부딪히며 깨닫게 해 주었던 것과는 다르게,
내 심장을 덜컹-움직였던 것은 기억하건데 아마, 새벽 3시가 다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던,
학교 캠퍼스 입구에 들어가기도 전, 곧 바스러지지 않을까? 싶었던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학교 간판?을 비추는 램프에
아스라히 비쳐보였던, 
평생을 살면서 한번도 '작다고' 느끼지 않았던 내 키를 하랄없이 '작게' 만들어 버리는 2미터가 훌쩍 넘게 쌓여있던 차 옆의
"눈더미"때문이였다
.

그것은. 내가 지금 딛고 있는 땅이 하루 전-내가 딛고 있던 땅에서 태평양을 건너고 공기마져 다르게 느껴지는 새로운 나라라는 것보다,
혹은 학교의 99.8%가 기숙사생이며  학교 안에 교장 선생님의 저택이 있는 미국 동부 특유의 오래된 프렙스쿨.이라는 것 보다-
더한 충격으로 내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꼬박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더 걸렸던 그 길었던 여정 속에 처음으로.
그리고 그 눈더미-와 더불어 체감온도 -30도를 밑도는 기온이 불러다준, 문자그대로 뼛속까지 스물스물 느껴지는 시린 바람에 '씨익-'
웃어 버릴 수 있었던건
어쩜 더위에 질려있던 내게,
차갑고 매서운 그 곳의 날씨는 나를 조금 더 강하게 만들 어 줄것 같은 기대 때문이였고-
3년이 훌쩍 지나가버린 오늘 날 돌이켜봤을때 메인의 날씨는.

그것 하나만은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던, 아마 살며 몇번 맛볼수 없는 기대충족이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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