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Southsea Crescent. Silverdale.
 
"이렇게 밝고, 화창할 수도 있구나" 라는 것이 뉴질랜드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였다. 12시간 후에 도착한 그 작지
않은 남반구의 나라의 태양의 밝기는, 11년동안 내가 봐온 북반구 작은나라 대한민국의 모든 햇살을 합쳐놓은 것
보다 밝고, 눈부셨던 것을 벌써 10년도 더 지난 오늘 날 까지 기억하고 있다.
 
두려움을 채 느끼지 못하는 어렸던 나이 덕분인지는 몰라도 새로운 땅에 처음으로 부모님도 없이 혼자 낯선 집에서,
낯선 가족과, 할 줄 아는 말이라곤 모두 합쳐서 열가지도 되지 않은 주제에,
그렇게 밝았던 햇살이 그렇게나 싱그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앞으로 찾아올 일들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주체없이 끓어오르는 그 밝음을 그 작은 가슴에
모두 담고자 했었다.
 
은빛골짜기 남쪽바닷가 53번지- 한 집의 주소라고는 아까울 정도로 너무나도 예뻤던 그 집의 기억이 어렴풋이
닫아놓았던 미련과 추억의 자물쇠를 푸르고 머리속에 돌아왔다. 분명 짧지 않았던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중에 분명
이 주소의 집 역시 내 집도 아니었거니와 분명 1여년 남짓-밖에 살지 않았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세히도 기억할수 있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예뻤던' 주소 때문일 것이다. 은빛골짜기의 남쪽바닷가
53번지. 물론 악몽과도 같았던 몇년의 세월중에 분명 이 곳에서의 생활이 조금은 '행복'했었음도 기억하지만,
역시 한낯 주소라고는 아까울정도로 예쁜, 그저 상상만으로도 즐거워 지는 이름아닌가-
 
남쪽바닷가 어디엔가 은빛골짜기 속에 53번째 집이라니. 마치 동화속에서 나올법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느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기대는 져버리게 되고, 환상은 늘 깨지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은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어느 영화에서 비춰졌던 것 마냥 동화속의 그림을 그리곤 하고 혹은 이 곳을
지구상에 남겨진 마지막 낙원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주며 꼭 한번 가봐야 할 곳이라며 상상을 하곤 한다.
다행스럽게도 뉴질랜드의 성수기는 북반구의 사람들이 한창 매서운 겨울바람에 벌벌 떨며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다
오클랜드 공항에 내려서는 곧장 반팔-반바지로 갈아입어야 하는 때다. 아마도 내가 느꼈던 너무나도 밝은 햇살은,
꽤나 오랫동안 컴컴하고 회색빛이였던 겨울하늘에 익숙해진 눈이 갑자기 다가선 여름의 태양을 낯설게 여겨서 였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나도 뉴질랜드를 밝고 화창한, 따뜻한 나라라고 느끼는거다.
자기네들이 여짓껏 겨울에 떨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 버린채.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뉴질랜드 장마-이다. 물론 북반구의 겨울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저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아닌 마치 하늘의 구멍이라도 난것 처럼 와르르륵-떨어지는 유리창 마져 깨어버렸었던 매서운 비는
겨울 내내
계속되고 이 때의 뉴질랜드란, 12월의 추위를 잊게 했었던 '밝음'따위라곤 찾아 볼수가 없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앉는,
낮과 밤을 잊게 하는 겨울 장마는 그 우울함을 설명할 수 조차 없겠다.

그리고 네번의 그 겨울장마를 보내며 어쩜 난 나의 햇살따위는 그 줄기차고 매서웠던 빗줄기와 함께
차갑디 차갑던
콘크리트 바닥으로 내리쳐버렸는지도 모른다.
매우 춥고, 매우 젖은, 매우 슬펐던, 그 나라의 겨울장마는 여전히 
강하지 못한 이 가슴에 무거운 비를 여전히 내리꽃고 있는지도 모른다.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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