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교하면 ‘눈치’… 중국, 자신만만 속도전… 일본, 男시름-女씩씩

 마음은 현실을 반영한다. 중국인은 이제 시간에 쫓길 만큼 역동적이고 자신감에 차있다. 그들은 변검 배우의 얼굴 가면이 수시로 바뀌는 것처럼 세태에 빨리빨리 적응해야 한다.(오른쪽 사진) 초식남(草食男)이 대거 등장한 일본에서는 여성의 남성화가 두드러진다. (해당사진 오른쪽) 남을 의식하고 사는 한국인은 피곤하다. 일러스트레이션=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중국인과 일본인의 마음은 대척점에 서 있다. 중국인은 물질적 풍요로 아픈 과거를 잊으려는 ‘망각의 시대’를, 일본인은 거품 붕괴 이후 희망을 잃어버린 ‘상실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한국인의 마음은 이들 사이, 그 어딘가에 놓여 있다.

중국의 지난 20여 년은 핏빛 문화대혁명(1966∼1976년)과 톈안먼(天安門) 민주화시위(1989년)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시간이었다. 중국인들은 아픈 기억을 정신적으로 억압하면서, 물질적으로는 개혁개방의 도도한 흐름을 타고 연평균 경제성장률 10%를 넘는 발전을 이룩했다. 미국과 함께 세계 주요 2개국(G2)으로 불리며 ‘노(NO)라고 말하는 중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인의 마음은 어느새 사춘기를 지나 훌쩍 커버린 젊은이처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떤 모험과 도전도 마다하지 않을 자세가 돼 있다.

일본의 지난 20여 년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증권과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이 1990년대에 한순간에 터지면서 경제성장이 정체된 채 속절없이 세월만 흘러갔다. 잃어버렸지만 동시에 잊어버리고 싶은 시간이기도 했다. 패전 후 40여 년 지속된 성장의 열매는 아버지 세대가 다 따먹었다는 생각에 젊은이들의 불만과 회의가 차올랐다. 프리터(아르바이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등 사회와 의도적으로 단절하는 이가 늘어만 갔다. 젊은이들은 세상을 다 알아버린 노인처럼 자신감이 부족해졌고 더 큰 세상, 낯선 환경에 도전하려는 자세도 줄어들었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2’와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의 ‘한중일 마음 지도’ 프로젝트 조사에서 드러난 한국 중국 일본 3국 사람들의 마음은 이 같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0여 년간 3국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그동안 차곡차곡 사람들의 마음에 쌓여왔다.

이 프로젝트에는 대홍기획(콘텐츠 기획)과 엠브레인(설문 실시)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한국인의 마음 지도’를 다뤘던 4월 30일자 O2 커버스토리의 후속 기사다.

○ 중국인, 새롭고 자극적인 경험 원해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은 한때 영화계의 세계적 장인이었다. 그가 총지휘한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개막식 행사는 중화주의의 부흥을 알리는 외침이었다. 통상 올림픽 개막 공연은 ‘세계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당시 행사는 한당(漢唐) 이래 1000여 년 만에 중국이 더는 졸고 있는 사자가 아님을 세계에 과시한 사건이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단지 중국 정부의 당당함만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타났다. 중국인들은 ‘나 자신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문항에 응답자 61.5%가 ‘그렇다(그렇다+매우 그렇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5점이 최고인 지수로 따지면 평균 3.72점이라는 높은 수치다. 같은 질문에 대해 한국인은 3.42점, 일본인은 2.87점을 기록했다. 선자(沈佳·중국인·32)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득이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것이란 장밋빛 꿈을 지닌 중국인은 현재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정부의 경제계획에 대한 신뢰도 높다”고 해석했다.

급격한 산업화와 성장은 빈부의 격차를 낳기도 했지만 중국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다. 기회의 문이 열려 있다고 믿는 사람은 도전을 겁내지 않는다. ‘약간 두려울지라도 새롭고 자극적인 경험을 좋아한다’는 질문에 중국인이 다른 두 나라에 비해 훨씬 높은 3.84점이란 수치를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임대근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중국인들은 과거 자신들을 지배하던 이민족을 결국엔 문화적, 정치적으로 동화시켜 버렸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현재의 중국인들은 개방돼 밀려오는 서구문물에 거부감이 적고, 현대문명의 이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이는 한국 일본보다 뒤늦게 글로벌화한 중국인이 정보기술(IT)이 낳은 새로운 미디어에 더 적극적이라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문항에 대한 중국인의 점수는 3.42점으로, 인터넷 왕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한국(2.75점)을 멀찌감치 제쳤다. 일본은 2.33점으로 가장 낮았다.

자신감과 도전정신으로 충만해 있지만, 시간에 대한 중국인들의 강박은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산다’는 질문에 대한 중국인의 긍정답변 지수는 3.32점을 기록해 ‘빨리빨리’의 한국인(2.88점)과 일본인(2.76점)을 무색하게 했다. 전통적 미덕쯤으로 여겨지던 만만디(慢慢地)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만만디가 중국 사회에서 2선으로 물러서는 조짐은 10여 년 전부터 나타났다. 임 교수는 2001년 왕샤오솨이(王小帥) 감독의 영화 ‘북경 자전거’를 보면서 그 징후를 감지했다고 말한다. 영화 속 시골에서 베이징으로 성공을 꿈꾸며 올라온 10대 소년이 택한 직업이 바로 자전거 퀵서비스였던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인의 마음이 ‘슬로(slow) 슬로’에서 ‘퀵(quick) 퀵’으로 바뀐 현실이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셈이다. 베이징의 사업가 류장타오(劉江濤·42) 씨는 “생활의 리듬이 점점 빨라졌다”며 “더 빠르게, 더 많이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조급증을 낳고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고도성장이란 ‘양날의 칼’에서 한쪽 날이 시간강박이라면 다른 하나는 스트레스다. 압축성장의 대명사 한국을 한발 앞서는 고도성장을 겪고 있는 중국인은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는 질문에 41%가 ‘그렇다’고 답했다. 오차범위 안이기는 하지만 한국인(38%)보다 많다. 경쟁 과열이 주된 원인이다. 대우증권에서 일하는 가오싱(高興·중국인·29) 씨는 “몇 년 만에 자기 주위에서 벼락부자가 나온다고 생각해 보라. 게다가 돈을 못 버는 사람들은 도태된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경쟁심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발표된 갤럽의 ‘2010 행복지수’에서 중국인의 71%가 “삶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고 답한 것도 이 같은 스트레스를 반영한다.  

▼ 중국인 만만디 옛 말… 한국인처럼 ‘빨리빨리’ 달리고 있다 ▼

○ 일본, 길고 긴 상실의 시대


하코다 데쓰야(箱田哲也) 일본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47)은 버블의 끝물이던 1988년에 입사했다. 거품경제가 정점을 찍고 하강국면에 접어들었을 때지만 도쿄(東京) 밤거리는 흥청망청했다. 술을 한잔하고 집에 돌아갈 때 택시를 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긴자(銀座) 같은 곳에서는 현재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합승을 해야만 겨우 차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하코다 지국장은 말한다. “지금 입사시험을 보는 학생들은 ‘참고 기다리면 좋은 미래가 온다’는 말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줄곧 일본이 뒤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며 살았으니까요.” 일본에서는 연공서열제, 종신고용 등 기존의 안정적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나 자신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질문에 일본인은 세 나라 국민 중 가장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하코다 지국장은 “일본의 지금 현실이 그렇다”고 했다.

낮은 자신감은 스트레스와 연관된다.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느낀다’는 질문에 일본인은 절반에 가까운 49.7%가 ‘그렇다’고 응답해 중국인(41%)보다 스트레스 정도가 높았다. 이번 조사가 3월 동일본 대지진 후에 실시됐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결과다. 일본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내 경제성장은 지지부진하고,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이 쫓아오면서 기존에 가졌던 것을 잃어간다는 상실감이 커졌다”며 “국가는 부자지만 개인은 가난하다는 생각과, 최근의 사회분위기가 스트레스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분석했다. 최근 일본 TV에서 스트레스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부쩍 증가한 것도 이를 반영한다.

‘평생직장’ 같은 아버지 세대의 철칙이 하나둘 깨져나가면서 마초처럼 일에 매진하던 노동윤리에도 균열이 생겼다. 일본의 20∼30세 초반 남성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1980년대 버블시대에 태어나 뭔가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그들의 성장기인 1990년대(‘잃어버린 10년’)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의 싹을 잘라버렸다. 두 가지 상반된 환경은 그들이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굳이 남성성을 강조해야 할 이유를 없애버렸다. 그래서 나타난 게 초식남(草食男)이다. ‘초식남이 세상을 바꾼다’의 저자 우시쿠보 메구미(牛窪惠) 씨는 “그들은 시대에 배반당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열심히 일했지만 성과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이번 조사에서 일본은 남성의 여성화와 여성의 남성화가 공존하는 사회, 초식남과 육식녀(肉食女)가 대치하는 사회가 돼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일본 여성의 39.2%가 ‘나는 여성적 성향에 비해 남성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해 한국 여성(28.6%)과 중국 여성(15.6%)을 훨씬 능가했다. 1∼5점 지수로 봤을 때도 일본 사회는 남성의 남성성향(3.31)과 여성의 남성성향(3.15)의 차이가 한국 중국에 비해 가장 작았다.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직장을 잃거나 취업이 안 돼 집에 머물다 보니 일본 남성은 점점 내향적으로 변해간 반면, 여성들은 맞벌이를 통해 경제력을 쥐게 되면서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국대 일어일문학과 대학원에서 유학 중인 일본인 사토 아리사(佐藤亞里沙) 씨도 “사회 진출이 늘어나는 여성들에게 ‘남자를 지켜줘야 한다’는 심리가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제도적 뒷받침이 한몫했다는 견해도 있다. 1980년대 일본은 ‘남녀기회균등법’을 제정해 취업, 직장생활에서 여성이 불공평한 처우를 받지 않도록 했는데 그 결실이 20여 년 만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 샌드위치 한국?

한국에서 8년째 살고 있는 한 외국인은 “한국인에겐 남의 눈을 의식하는 일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며 “자기 인생의 가치에 자신뿐만 아니라 남의 평가도 포함된 것 같아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이를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대로 한국인은 일본 중국에 비해 남의 눈치를 가장 많이 보고, 시기와 질투심이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다.

▶본보 4월 30일자 B2면 한국인 ‘시기·질투 지수’…


이는 남과 비교를 아주 많이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신과 남을 자주 비교하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유발되면 우울, 고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책 ‘중국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 박근형 박사(중국사)는 의식주란 용어를 통해 한국인의 타인 시선 의식을 중국인과 비교한다. 한국인은 보통 의식주라 말하며, 생활의 조건 중 입는 옷(의·依)을 가장 강조하지만, 중국인은 식의주라고 해 먹을 것(식·食)을 더 강조한다. 옷(혹은 용모)은 남에게 보이는 것이다. 그만큼 ‘뭐가 묻기라도 했나’ ‘초라해 보이지 않을까’ 하며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고 따라서 본인이 피곤해진다. 반면 중국인에게는 옷이나 용모보다는 자신의 배를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들이 때 묻은 옷, 떡 진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고속성장으로 인해 이런 중국인의 가치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인은 타인에 대한 부러움이나 시기심이 세 나라 국민 중 가장 낮다. 반면 타인에 대한 관대함도 작은, 개인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 한국인의 마음은 중국인과 일본인의 중간지대에 분포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 문화의 흐름은 중국에서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흘러간 반면 경제발전의 흐름은 일본을 거쳐 한반도를 지나 중국으로 갔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한국은 중일 양국의 가교, 또는 점이지대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마음은 앞으로 어떤 쪽으로 움직일 것인가. 5년 후의 ‘한중일 마음 지도’ 프로젝트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marnia@dku.edu  

■ 한중일 3000명 어떻게 조사했나

‘한중일 마음 지도’ 프로젝트 설문조사는 지난달 11일부터 15일까지 한국, 중국, 일본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국가별 1000명).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온라인 조사 전문회사 엠브레인의 패널이다. 이 패널들은 각국의 성별, 연령별, 소득별 인구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전국 20∼50대를 대상으로, 중국에서는 1, 2급 도시에 사는 20∼40대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중국의 경우 지역적 경제 수준의 편차가 심하므로 한국 및 일본과 직접적 비교가 가능한 2급 도시까지를 대상으로 삼았다. 또 인터넷 조사라는 특성 때문에 중국에서는 50대가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그러나 50대가 빠져도 국민 전체의 경향성은 비슷하게 나오기 때문에 조사 결과의 유의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번 조사의 신뢰 수준은 95%이며, 오차 범위는 ±4.27%다.


http://news.donga.com/Culture/New/3/07/20110520/37411456/1

  1. Favicon of http://grze.tistory.com BlogIcon 센티에로 2011.06.07 02:37 신고  링크  수정/삭제  답글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사람들 눈을 의식하면서 살기 싫은데 자꾸 의식하게 되네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거나 웃으면 내옷에 뭐가 묻었나 혹은 나를 우습게 보나 하는 생각이ㅠㅠ